아픈 곳 없었는데.. 예천의 30대 취준생은 왜 폭염으로 숨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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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모(가명ㆍ39)씨는 지난해 7월 예천군 유천면의 한 야산에서 진행되던 태양열 패널(집열판) 설치 공사 현장의 책임자였다. 그가 이야기 한 젊은 사람은 고(故) 양영호(당시 32세)씨다. 1년이 흐른 지금, 주변 사람들에게 그날의 일은 아직도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제 사건’이다.

다음주부터 면사무소 공공근로를 하기로 돼 있던 양씨가 예천군 중평리의 집을 나선 건 그날 새벽 4시쯤이었다. 섭씨 35도를 넘겼던 전날의 열기는 밤사이 한풀 꺾였지만 공기는 여전히 ‘열대야’(최저기온 25도 이상)에 가까웠다. 오전 4시30분 예천 버스터미널 인근 인력사무소에 모인 양씨 일행은 1톤 트럭과 승용차에 나눠 타고 작업 현장을 찾았다.

예천군 유천면 송전리 산 15번지의 야트막한 산비탈, 둘레 230m 남짓한 사다리꼴 모양 부지가 작업장이었다. 공사가 70% 정도 진행됐다지만 나무를 몽땅 베어낸 현장은 그늘 한 점 없는 황토 벌판이었다. 180㎝ 정도 키에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양씨는 쇠파이프, 태양광 모듈 같은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현장 작업 엿새째, 태양광 패널 설치 현장은 두 번째였다.

지난해 7월 폭염으로 사망한 양영호씨가 일하던 경북 예천군의 태양광 패널 설치 현장. 현재는 공사가 마무리 돼 정상 가동 중이다. 김창선 PD

오후 2시가 지나 예천의 기온이 35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때쯤이었다. 양씨는 곁에 있던 작업반장에게 “어지럽다, 몸이 좀 안 좋다”고 말했다. “물 마시고 가서 좀 쉬라”는 말을 듣고 작업장 구석에 잠시 앉아 있기로 했다. 그가 몸을 피한 곳은 듬성듬성 햇볕이 새는 빈약한 나무그늘이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양씨가 갑자기벌떡 일어나 작업장 한가운데로 뛰기 시작했다.동료들의 시선이 일순간 집중됐다. 그리고 그가 쓰러졌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양씨를 그늘로 옮겼다. 안전화를 벗기고 허리 벨트를 풀었다. 얼음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을 닦아 줬다. 하지만 양씨는 계속 몸을 떨었다. 강원모씨는 양씨의 품 속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부친의 번호가 보였다.

“아드님이 혹시 간질(뇌전증)이 있습니까.”“무슨 소리냐. 건강한 애다. 그런 병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씨의 몸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후 2시22분, 119에 신고했다.11분 후 예천119안전센터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몸에 자극을 주면 반응은 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양씨의 체온은 41.7도였다. 구급차는 40㎞나 떨어진 안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증상 발생 후 40분 만에 구급차는 병원에 도착했다.

산소호흡기를 차고 응급실 침대에 누운 그는 가늘게 눈을 뜬 채 1초에 한 번꼴로 짧고 강하게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고개를 들면서 생긴 진동이 몸 아래에 반복적으로 전해졌다. 그르렁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호흡기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억, 억” 하는 소리도 들렸다. 간혹 가다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씩 맺혔다.쓰러지기 전 “갑자기 뛰었다”는 목격담을 두고 의사는 몸에 경련이 생기면서 나온 반응 같다고 했다.

체온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주위에서 “열사병, 열사병” “산소 풀로 주세요” 하는 의료진의 말들이 다급하게 오갔다. 동공의 반응을 체크하고, “양영호님? 양영호님?”하고 불러 봤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의 체온은 떨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40도를 넘어서길 반복했다. 뇌 손상 여부가 확인되기 전에 이미 높은 체온으로 인한 콩팥 손상이 확인되면서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쓰러진 지 6일째인 7월 26일 오후 11시20분, 그는 결국 숨을 거뒀다. 작년 여름 보호자가 깜박해 각각 차 안에서 숨진 2세, 4세 아이를 제외하면 양영호씨는 질본이 응급실을 통해 집계한 2018년 온열질환 최연소 사망자였다.

사건 후 10개월이 지났지만 양씨의 아버지 석구씨는 영영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자기 원망의 고리를 맴돌고 있었다. 어떨 때는 “고집대로 출근하게 뒀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가 “직장생활 하면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고 얘기해서 저렇게 됐나”라고 자책했다. 양씨의 사인은 열사병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그가 왜 그리 허망하게 죽어야 했는지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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